화해와 기억 관련 에세이・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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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베가쿠인 대학 현대사회학부 현대사회학과 준교수 마쓰다 히로코 「하얼빈 여행기」

2018년 3월 17일부터 20일까지 시민운동반 공동연구 활동의 일환으로 연구 대표자와 분담 연구원 총 7명이 중화인민공화국 헤이룽장성의 성도 하얼빈시와 그 근교를 방문했습니다.

하얼빈과 그 근교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러시아가 도시 개발을 추진했고 만주 사변 이후에는 일본 동북 지배의 거점이 되었습니다.하얼빈역은 1909년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하얼빈은 중일전쟁(중국에서는 '항일전쟁'이라고 언급되는 경우가 많은데, 본문에서는 이하 일본어로 널리 통용되고 있는 '중일전쟁'으로 통일됨)을 둘러싼 역사인식을 논하는 데 가장 중요한 장소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도착한 날 저녁에 먼저 시가 중심부를 산책했습니다.소피아 대성당을 비롯한 러시아식 건물과 옛 하얼빈 야마토 호텔(현 용문귀빈루 주점)과 같은 일본인의 손으로 만든 건조물이 혼재된 풍경을 보면서 이 도시의 다원적인 역사성을 실감할 수 있었고, 나아가 그것들이 어떻게 오늘날 관광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둘째 날은 하얼빈시 교외에 있는 방정현으로 향했습니다.이곳은 다수의 만주 이민자들이 인양할 때 통과해 길에서 병과 굶주림, 소련군의 습격을 두려워해 집단 자결로 목숨을 잃은 사람도 적지 않았습니다.우리는 이 사람들을 모시기 위해 중국 정부가 주도하여 건립한 일본인 공묘와 그에 인접한 중국 양부모 공묘를 방문했습니다.

[caption id=" "align="alignnone" width="300"] 방정현 일본인 공묘 정문 앞에서 [/caption]

미리 듣기는 했지만 공묘가 설치된 부지 일대는 최근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았고, 저희가 방문했을 때도 정문은 잠겨 있었습니다.2011년 현 정부가 부지 내에 건립한 기념비가 일본인의 만주 개척을 긍정하는 것이라며 폭력적인 항의가 있은 이후 경비 체제가 강화되어 마침내 일반 공개가 중지되었다고 합니다.우리는 동행 중국인 가이드가 관리인과 협상함으로써 간신히 후문을 통해 들어갈 수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담긴 기념비나 비석을 오랫동안 관리하는 데 어려움을 느꼈습니다.

[caption id="" align="alignnone" width="300"] 침화일군 제73일부대 죄증진열관 앞에서 [/caption]

셋째 날에는 중일전쟁으로 희생된 사람들을 기념하고 있는 동북열사기념관과 안중근기념관을 방문했습니다.또한 구일본군의 731부대 터에 건설되어 부대의 실태와 그것이 설치된 배경, 부대가 저지른 전쟁범죄에 의한 피해 실태등을 전시하고 있는 「침화일군 제731부대 죄증진열관」을 방문했습니다.칠삼일부대는 그 실태가 알려질까 두려워 부대원들이 복원하기 전 인체실험을 하던 현장을 폭파해 증거인멸을 꾀했습니다.현지에서는 폭파된 현장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고 연구동과 실험실도 유구로 여겨져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2015년 리뉴얼 오픈한 진열관은 칠삼일 부대의 실태와 부대가 하얼빈에 마련된 역사적 배경 등을 잘 이해할 수 있어 볼만했습니다.부대의 실태를 밝히는 영상 자료로 일본에서 제작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의 일부가 방영되고 있었던 것은 흥미롭게 느껴졌습니다.

[caption id=] "align="alignnone" width="300"] 인체실험이 실행된 시설터. 증거인멸을 위해 폭파한 흔적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caption]

본 프로젝트는, 단지 학술적인 실증 연구의 추진 뿐만이 아니라, 「국민적」즉 학술적 커뮤니티를 넘어 보다 넓은 범위의 사람들 사이에서의 「화해」를 재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현실 사회 속에서 역사와 기억이 어떻게 이야기되고 계승되고 있는지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이번 방문에서는 중국 내에서 어떻게 중일전쟁의 기억이 계승되고 있는지 엿볼 수 있어 매우 뜻깊었습니다.